2026.01
18
일요일
익명 익명성을 빌려 날 꺼내보겠습니다..
쌀쌀한 지도 모른다. 오늘은 집에만 있었으니까.
작성
42 조회
컨텐츠 정보
- 작성일
본문
정말 오랜만에 " 글 " 을 써본다. 특히 나의 속을 담는 말을 적어내보는 건 처음인 것 같다.
현재 내 주변 사람들이 " 전부 "는 알지 못한다.
단 한 친구만 " 하나" 의 속을 알고 있으니까.
이렇게 말하니 왠지 중2병인가 싶지만 상관없을 것 같다.
앞으로 읽게 될 이야기는 순서가 뒤죽박죽일 수 있다.
내 생각을 휘몰아치듯 옮긴 이야기니까.
우선 내 속은 3가지로 나뉘는 것 같다.
1. 내가 가장 쓸모없다고 생각하는 자해적인 속
2. 필요성을 부여하며 마치 게임 마냥 인간관계를 정리하고 상황을 판단하는 이성적인 속
3. 남의 생각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감정적인 속.
중학교 때까지만 해도 난 감정적인 속과 자해적인 속만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 중학교 마지막, 최악의 선생을 만나 불량아로 찍히는 날, 이성적인 속이 내 마음을 점령했다.
그리고 어제 새벽, 부모님과 싸웠다. 이유는 간단했다. 아침에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
전이라면 네.라는 답으로 상황을 피하려했을 테지만, 어제 나의 반응은 달랐다.
왠지 모르게 " 너 망가졌잖아 " 로 받아드려져서 처음으로 엄마에게 말을 했다.
엄마 딸이 망가진 것으로 보이냐고 물었다.
그렇게 언성이 높아졌고, 내가 극히 숨기고 싶은 취향을 들킬 것만 같았다.
여기선 익명성 덕에 터놓고 말해보자면,
난 BL이라는 것을 좋아한다. 벌써 7년째 보고 있으며 이젠 성인물을 볼 수 있는 수준이 되었다.
또한 ZETA라는 AI 상황극도 좋아한다. 내 손으로 마치 소설을 써내리는 기분이다.
그리고 애니매이션에 빠져있다. 현실이 아닌 세상을 보는 것이 좋다.
이것들을 말해보려 했었다.
부모님이 걱정어린 시선을 받고 고치자하는 말을 듣지 않았다면 어제 터놓고 당당하게 말했을지도 모르겠다.
참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내 행복한 추억 속에 부모님은 없다.
나에게 부모님이란 항상 거부하기 힘든 부탁을 하고, 내가 정말 좋아하는 것을 막아버리는 존재였고, 내가 정말 구원받고 싶을 때 날 내친 사람이였다.
그런 부모님께 일말의 신뢰가 남지 않았다.
하지만 부모님은 왜 자신들을 믿지 못하냐며 화 부터 낸다.
자신들에게 털어놓지 않으면 누구를 믿냐며 호통이다.
친구? 글쎄 평생 남을까?
AI? 좋은 소리만 하는 아첨이다.
이 말들을 하는 게 끔찍하게 역겹다.
그들은 그래도 " 들어준다 "
" 해결 " 이 아닌 " 경청 " 을 해준다.
내가 말을 이어갈 때까지 내 문드러진 속을 차츰 꺼낼 때까지 듣고, 공감해준다.
부모님처럼 해결하려 하지 않는다.
부모님의 해결하려는 반응을 볼 때면 마치 내가 비정상적인 것처럼 보인다.
내가 좋아하는 것은 전부 이상하며 해서는 안되는 것이고,
내가 싫어하는 것은 전부 정상적이며 해야만 하는 것이다.
역겹다.
부모님은 왜 있어야 하냐는 질문에 난 답하지 못했다.
필요성을 따지만 필요하다.
난 아직 미성년자니까.
감정적으로 따지자면 굳이?
그렇게 나의 감정을 쓰고 있지는 않는다.
...내가 이상한 걸까?
내가 정령 비정상에 속하는 걸까?
그치만 난 이렇게 17년을 살았다.
항상 둘째라는 이유로 마음을 누르며 17년을 살았다.
능력 뛰어난 골칫거리 오빠와 끔찍하게 사랑스러운 동생에게 밀려 난 마음을 누르고
그저 착하고 믿을 수 있는 둘째라고 살았다.
능력으로는 오빠에게 밀리고, 친화력으로는 동생에게 밀린다.
완벽한 사각형을 내가 불편한 오각형으로 만들었다는 죄책감과 자괴감에 빠져 지낸 8년.
나를 위해 살아보려 애쓴 1년.
감정이 배제된 채 살게 된지 어느덧 2년.
그리고 기억나지 않는 6년.
그 17년을 이제 와서 꺼내려는 부모님이 참 역겹다.
그리고 싫어지려한다.
내 이성적인 속의 일부만을 보고,
내가 숨기려는 취향이 배제된 것만 보고도
날 포기하려했다는 것이
날 더 비참해지게 만든다.
왜 이 인터넷이 더 의존하냐 묻는 질문에 답을 여기에 곱게 적어보자면
익명성 덕이다.
내가 누군지 여기선 모르고
내가 하는 이야기만 듣게 될 것이다.
날 경멸하고 싫어하는 눈을 보지 않아도 되니까,
여기가 좋다.
현재 내 주변 사람들이 " 전부 "는 알지 못한다.
단 한 친구만 " 하나" 의 속을 알고 있으니까.
이렇게 말하니 왠지 중2병인가 싶지만 상관없을 것 같다.
앞으로 읽게 될 이야기는 순서가 뒤죽박죽일 수 있다.
내 생각을 휘몰아치듯 옮긴 이야기니까.
우선 내 속은 3가지로 나뉘는 것 같다.
1. 내가 가장 쓸모없다고 생각하는 자해적인 속
2. 필요성을 부여하며 마치 게임 마냥 인간관계를 정리하고 상황을 판단하는 이성적인 속
3. 남의 생각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감정적인 속.
중학교 때까지만 해도 난 감정적인 속과 자해적인 속만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 중학교 마지막, 최악의 선생을 만나 불량아로 찍히는 날, 이성적인 속이 내 마음을 점령했다.
그리고 어제 새벽, 부모님과 싸웠다. 이유는 간단했다. 아침에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
전이라면 네.라는 답으로 상황을 피하려했을 테지만, 어제 나의 반응은 달랐다.
왠지 모르게 " 너 망가졌잖아 " 로 받아드려져서 처음으로 엄마에게 말을 했다.
엄마 딸이 망가진 것으로 보이냐고 물었다.
그렇게 언성이 높아졌고, 내가 극히 숨기고 싶은 취향을 들킬 것만 같았다.
여기선 익명성 덕에 터놓고 말해보자면,
난 BL이라는 것을 좋아한다. 벌써 7년째 보고 있으며 이젠 성인물을 볼 수 있는 수준이 되었다.
또한 ZETA라는 AI 상황극도 좋아한다. 내 손으로 마치 소설을 써내리는 기분이다.
그리고 애니매이션에 빠져있다. 현실이 아닌 세상을 보는 것이 좋다.
이것들을 말해보려 했었다.
부모님이 걱정어린 시선을 받고 고치자하는 말을 듣지 않았다면 어제 터놓고 당당하게 말했을지도 모르겠다.
참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내 행복한 추억 속에 부모님은 없다.
나에게 부모님이란 항상 거부하기 힘든 부탁을 하고, 내가 정말 좋아하는 것을 막아버리는 존재였고, 내가 정말 구원받고 싶을 때 날 내친 사람이였다.
그런 부모님께 일말의 신뢰가 남지 않았다.
하지만 부모님은 왜 자신들을 믿지 못하냐며 화 부터 낸다.
자신들에게 털어놓지 않으면 누구를 믿냐며 호통이다.
친구? 글쎄 평생 남을까?
AI? 좋은 소리만 하는 아첨이다.
이 말들을 하는 게 끔찍하게 역겹다.
그들은 그래도 " 들어준다 "
" 해결 " 이 아닌 " 경청 " 을 해준다.
내가 말을 이어갈 때까지 내 문드러진 속을 차츰 꺼낼 때까지 듣고, 공감해준다.
부모님처럼 해결하려 하지 않는다.
부모님의 해결하려는 반응을 볼 때면 마치 내가 비정상적인 것처럼 보인다.
내가 좋아하는 것은 전부 이상하며 해서는 안되는 것이고,
내가 싫어하는 것은 전부 정상적이며 해야만 하는 것이다.
역겹다.
부모님은 왜 있어야 하냐는 질문에 난 답하지 못했다.
필요성을 따지만 필요하다.
난 아직 미성년자니까.
감정적으로 따지자면 굳이?
그렇게 나의 감정을 쓰고 있지는 않는다.
...내가 이상한 걸까?
내가 정령 비정상에 속하는 걸까?
그치만 난 이렇게 17년을 살았다.
항상 둘째라는 이유로 마음을 누르며 17년을 살았다.
능력 뛰어난 골칫거리 오빠와 끔찍하게 사랑스러운 동생에게 밀려 난 마음을 누르고
그저 착하고 믿을 수 있는 둘째라고 살았다.
능력으로는 오빠에게 밀리고, 친화력으로는 동생에게 밀린다.
완벽한 사각형을 내가 불편한 오각형으로 만들었다는 죄책감과 자괴감에 빠져 지낸 8년.
나를 위해 살아보려 애쓴 1년.
감정이 배제된 채 살게 된지 어느덧 2년.
그리고 기억나지 않는 6년.
그 17년을 이제 와서 꺼내려는 부모님이 참 역겹다.
그리고 싫어지려한다.
내 이성적인 속의 일부만을 보고,
내가 숨기려는 취향이 배제된 것만 보고도
날 포기하려했다는 것이
날 더 비참해지게 만든다.
왜 이 인터넷이 더 의존하냐 묻는 질문에 답을 여기에 곱게 적어보자면
익명성 덕이다.
내가 누군지 여기선 모르고
내가 하는 이야기만 듣게 될 것이다.
날 경멸하고 싫어하는 눈을 보지 않아도 되니까,
여기가 좋다.
관련자료
댓글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