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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 고향을 찾았을때 둘러본 묘지들 모습.
양지바른 평평한 곳에 둥그런형의 큰 봉분의묘와 그 옆엔 조상의 업적을 쓴 큰 비석이 자리하고 있어
큰 면적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대 부분의 모습였는데....
몰라보게 변한 것을 보고 격세지감을 느꼈다.
모든 묘들이 작은 평장묘로 바꾸어 놨다.
산자들의 편리함을 따르니 그럴수밖에....
월평뒷산의 문중의 몇몇 조상들의 묘.
문중의 내노라하는 어르신 30-40명이 모여서 묘지앞에서 제사를 가을엔 꼭 지냈었는데...
그리고, 아버진 문중에선 알아주는 위치였던지 그 날만은 까만 두루마기의 한복을 입으시곤
그 행사에 가셔 <축문>을 낭독하신걸 봤었다.
-유 세차 감 소고 ...
음율을 붙여 축문을 낭독하시는 아버지의 모습이 대단한 분으로 기억된다.
한문학자이신 할아버지의 덕으로 일찍 한문을 통독하셔서 그런 행사에 뽑히신거 같다.
그 당시엔, 한문은 고사하고 한글조차 해독못하는 문맹자가 대부분의 사람들 틈에서 한문을
배운 것은 대단한 존재인거지.
암튼 아버진 문중행사엔 늘 빠지지 않고 참석하셔서 명성을 날리신거 아닐까?
그 덕에 목에 힘을 준건 나이고...
우리문중 조상들도, 금성산 아래의 태평사 부근에 이장해 안장되어 있다.
벌써 그 행사를 한지 어언 20년은 넘은거 같다.
작은 봉분의 반 평장형의 묘지도 이젠 모두 평장형으로 바꾼단소식이다.
그것도 넓은 면적을 차지한단 판단한거겠지.
평장은 간단했다.
평평한 곳에 화장한 유골을 묻고 그위에 작은 잔디를 덮고 위에 가신분의 성함이 적혀있을 뿐...
주변은 온통 대리석돌을 깔아 풀 한포기가 나질 않아 벌초란 년중행사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편리한 묘지관리.
작은 면적으로 활용한단 것이 주요원인이고 벌초의 고생도 면한단 지극히 편리한 현대인의 사고.
죽으면 결국은 이런 그 작은 면적의 땅에 묻히고 마는 초라한 인생.
생과사의 경계가 이렇게 극명하게 갈린다.
-<김 영길의 묘>
바로 우리집 옆에 한평생 살았던 그 형이 이곳에 눠 있다.
나서 고향을 한번도 떠나지 않고 죽을때까지 그 집지켰던 형 영길.
가끔 시골에 오면 대화를 했던분이 말없이 고인이 되어 맞아준다.
자신의 형이 6.25때 전사한 바람에 부자로 변한 집이 영길형의 집.
영길형은 자신의 형 영복이 전사한 바람에 벼락부자가 된 케이스.
문전옥답을 사들였고, 부자로 변했지만....
사고는 바꾸지 못한가 보다.
늘 가난한 티를 벗지 못하고 사셨다.
-형님, 이젠 살만하시니 집도 새로 짓고 좀 멋지게 살아보세요
-뭐 내가 불편하지 않는데 뭐 그럴필요 있나?
-좀 세상답게 멋진 집에서 살아봐야 될거 아닙니까?
뭐가 걱정입니까?이젠 부자잖아요?
불과 몇년전 시골에 왔을때만 해도 이런 대화를 했었는데 전혀 사고의 변화가 없었다.
-저 사람은 절대로 집을 못짓고 살아 얼마나 짠돌인데 뭐...
동네 사람들이 그렇게들 말들했다.
돌아가신 바로 몇 달후, 아들이 아담한 단독의 멋진집을 신축.
영길형의 고집으로 돌아가시면 계획했던 것을 곧 실행에 옮긴 아들.
-돈 많은 부자면 무슨 필요가 있는가?
저런 멋진집을 지어 살아보지도 못하고 그 허물어질듯한 고택에서 결국 살다 갔는데...
아집였을까? 구두쇠여서 그랬을까?
번 사람과 쓴 사람은 같지 않았다.
부모가 이르켜 세운 부.
자식들은 그 열매를 따면 된다.
부모의 공을 알고나 있을까?
그 나마 공을 알면 그래도 사람이지만 당연한 열맨줄 안다.
부모님과 동생의 묘.
우리도 평장을 해야 한다.
매년 동생이 벌초를 돈을 주고 관리하고 있지만 후엔 누가 관리를 할것인가?
그게 이유.
성산동 사는 조카 주현에게,
-너 아버지 묘를 이장할때 어떻게 할거냐?
그 장소에 너의 어머니유골함을 갖고와 합장하는 방안.
아버지유골함을 갖고가 그곳 납골당에 함께 보관하는 방안.
그 선택은 너의 남매가 결정해라.
내가 결정할 문제는 아니니...
-큰 아버지 고민을 해봐야겠지만 지금은 모셔와 어머니와 한곳에 모실려고 하고는 있어요
시간이 있으니 세화랑도 대화를 해보죠.
이미 현재의 납골당에 아버지 자리를 비워 뒀다고 했다.
내 생각은 고향에서 부모님과 한장소에서 묻혔으면 하는데 애들의 생각은 다른거 같다.
지리적으로 원거리가 걸림돌일거 같단 것이지만....
아버지 고향은 자신의 고향으로 생각하면 될것.
1년에 한 두번 차로 이동하면 오는 곳.
4시간이면 도달하는 거리가 문제가 아닐것 같지만 그건 주현에게 일임할 생각이다.
다들 평장으로 변해가는데 고집을 부리고 있을 이유가 없다.
단순하게 깔끔하게 모셔야지.
형님과 소통해서 결정할것이지만,이미 평장을 하기론 결정은 되었다.
미리 미리 잘 하는 곳을 알아보고 결정하자.
시골엔, 진국이 동생이 그곳에 주름잡고 있어 든든하다.
<수구초심>이란 말.
동물도 그럴진데 사람이 어찌 고향을 잊으랴...
나도 죽으면 고향으로 돌아갈 생각이다.
그 생각을 하면 괜히 슬퍼진다.
자연으로 돌아감은 지극히 자연스런 현상인데....
일종의 탐욕이겠지..
양지바른 평평한 곳에 둥그런형의 큰 봉분의묘와 그 옆엔 조상의 업적을 쓴 큰 비석이 자리하고 있어
큰 면적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대 부분의 모습였는데....
몰라보게 변한 것을 보고 격세지감을 느꼈다.
모든 묘들이 작은 평장묘로 바꾸어 놨다.
산자들의 편리함을 따르니 그럴수밖에....
월평뒷산의 문중의 몇몇 조상들의 묘.
문중의 내노라하는 어르신 30-40명이 모여서 묘지앞에서 제사를 가을엔 꼭 지냈었는데...
그리고, 아버진 문중에선 알아주는 위치였던지 그 날만은 까만 두루마기의 한복을 입으시곤
그 행사에 가셔 <축문>을 낭독하신걸 봤었다.
-유 세차 감 소고 ...
음율을 붙여 축문을 낭독하시는 아버지의 모습이 대단한 분으로 기억된다.
한문학자이신 할아버지의 덕으로 일찍 한문을 통독하셔서 그런 행사에 뽑히신거 같다.
그 당시엔, 한문은 고사하고 한글조차 해독못하는 문맹자가 대부분의 사람들 틈에서 한문을
배운 것은 대단한 존재인거지.
암튼 아버진 문중행사엔 늘 빠지지 않고 참석하셔서 명성을 날리신거 아닐까?
그 덕에 목에 힘을 준건 나이고...
우리문중 조상들도, 금성산 아래의 태평사 부근에 이장해 안장되어 있다.
벌써 그 행사를 한지 어언 20년은 넘은거 같다.
작은 봉분의 반 평장형의 묘지도 이젠 모두 평장형으로 바꾼단소식이다.
그것도 넓은 면적을 차지한단 판단한거겠지.
평장은 간단했다.
평평한 곳에 화장한 유골을 묻고 그위에 작은 잔디를 덮고 위에 가신분의 성함이 적혀있을 뿐...
주변은 온통 대리석돌을 깔아 풀 한포기가 나질 않아 벌초란 년중행사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편리한 묘지관리.
작은 면적으로 활용한단 것이 주요원인이고 벌초의 고생도 면한단 지극히 편리한 현대인의 사고.
죽으면 결국은 이런 그 작은 면적의 땅에 묻히고 마는 초라한 인생.
생과사의 경계가 이렇게 극명하게 갈린다.
-<김 영길의 묘>
바로 우리집 옆에 한평생 살았던 그 형이 이곳에 눠 있다.
나서 고향을 한번도 떠나지 않고 죽을때까지 그 집지켰던 형 영길.
가끔 시골에 오면 대화를 했던분이 말없이 고인이 되어 맞아준다.
자신의 형이 6.25때 전사한 바람에 부자로 변한 집이 영길형의 집.
영길형은 자신의 형 영복이 전사한 바람에 벼락부자가 된 케이스.
문전옥답을 사들였고, 부자로 변했지만....
사고는 바꾸지 못한가 보다.
늘 가난한 티를 벗지 못하고 사셨다.
-형님, 이젠 살만하시니 집도 새로 짓고 좀 멋지게 살아보세요
-뭐 내가 불편하지 않는데 뭐 그럴필요 있나?
-좀 세상답게 멋진 집에서 살아봐야 될거 아닙니까?
뭐가 걱정입니까?이젠 부자잖아요?
불과 몇년전 시골에 왔을때만 해도 이런 대화를 했었는데 전혀 사고의 변화가 없었다.
-저 사람은 절대로 집을 못짓고 살아 얼마나 짠돌인데 뭐...
동네 사람들이 그렇게들 말들했다.
돌아가신 바로 몇 달후, 아들이 아담한 단독의 멋진집을 신축.
영길형의 고집으로 돌아가시면 계획했던 것을 곧 실행에 옮긴 아들.
-돈 많은 부자면 무슨 필요가 있는가?
저런 멋진집을 지어 살아보지도 못하고 그 허물어질듯한 고택에서 결국 살다 갔는데...
아집였을까? 구두쇠여서 그랬을까?
번 사람과 쓴 사람은 같지 않았다.
부모가 이르켜 세운 부.
자식들은 그 열매를 따면 된다.
부모의 공을 알고나 있을까?
그 나마 공을 알면 그래도 사람이지만 당연한 열맨줄 안다.
부모님과 동생의 묘.
우리도 평장을 해야 한다.
매년 동생이 벌초를 돈을 주고 관리하고 있지만 후엔 누가 관리를 할것인가?
그게 이유.
성산동 사는 조카 주현에게,
-너 아버지 묘를 이장할때 어떻게 할거냐?
그 장소에 너의 어머니유골함을 갖고와 합장하는 방안.
아버지유골함을 갖고가 그곳 납골당에 함께 보관하는 방안.
그 선택은 너의 남매가 결정해라.
내가 결정할 문제는 아니니...
-큰 아버지 고민을 해봐야겠지만 지금은 모셔와 어머니와 한곳에 모실려고 하고는 있어요
시간이 있으니 세화랑도 대화를 해보죠.
이미 현재의 납골당에 아버지 자리를 비워 뒀다고 했다.
내 생각은 고향에서 부모님과 한장소에서 묻혔으면 하는데 애들의 생각은 다른거 같다.
지리적으로 원거리가 걸림돌일거 같단 것이지만....
아버지 고향은 자신의 고향으로 생각하면 될것.
1년에 한 두번 차로 이동하면 오는 곳.
4시간이면 도달하는 거리가 문제가 아닐것 같지만 그건 주현에게 일임할 생각이다.
다들 평장으로 변해가는데 고집을 부리고 있을 이유가 없다.
단순하게 깔끔하게 모셔야지.
형님과 소통해서 결정할것이지만,이미 평장을 하기론 결정은 되었다.
미리 미리 잘 하는 곳을 알아보고 결정하자.
시골엔, 진국이 동생이 그곳에 주름잡고 있어 든든하다.
<수구초심>이란 말.
동물도 그럴진데 사람이 어찌 고향을 잊으랴...
나도 죽으면 고향으로 돌아갈 생각이다.
그 생각을 하면 괜히 슬퍼진다.
자연으로 돌아감은 지극히 자연스런 현상인데....
일종의 탐욕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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