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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조시대 영정조 시대의 무관 <노상추>일기를 봤다.
1746년 태어났으니 280년전의 사람으로 이조문화가 꽃피던 영정조 시대의 무관이다.
그는,
문관을 원했지만,그 당시엔 노론이 득세한 세상이라 과거도 맘대로 볼수조차 없었던 모양.
그는 지금의 선산이지만,그의 집안은 영남의 남인파라 힘이 없었던가 보다.
사색당파 싸움으로 임진왜란조차 선조에게 엉뚱한 보고를 한 바람에 왜군침략의 정보를 왜곡하곤 전쟁대비를 하지 않은 조정의 탓도 있지만....
율곡의 10만 양병설을 귀담아듣지 않았던 선조가 그런 화를 당한건 너무도 자명한 이치.
노상추는,
17세부터 죽기전인 84세까지 꼬박 꼬박 적은 일기가 68년간 지속되었단다.
대단한 집중력과 그시절의 힘든 기록.
18세기의 그 당시의 시대와 생활상을 엿볼수 있는 귀중한 자료다.
그가 과거에 급제하기 위해 서울로 오고 가고 한 것들이 10년으로 그게 논9마지기, 밭90마지기 돈 500냥을 쏟아부어 이룬것이 겨우 무과급제였다.
신분상승을 위해선 과거급제만이 유일한 선택.
개나기 봇다리를 메고 한양으로 과거를 보러가는데 꼬박 1 주일이 소요된것도 기록된 것.
합격에의 일념으로 10년을 들낙거렸으니 어지간한 의지와 재산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과거도 아무나
볼수 있는것 아닌건가 보다.
지금환산하면 5억?
지금도 시골에서 5억을 투자해 과거를 봐야 한다면 과연 끝까지 도전할 사람이있을까?
무과에 합격하고도 4년을 더 기다려야 했단다
19대 숙종때 너무 많은 인원을 선출한 바람에 다 소모될수가 없었던 탓.
무과에 합격하고도 그 기다림의 4년동안
한시도 시골에 머물수 없어 한양에 찾아가 소위 배경있는 양반들을 찾아가 읍소를 해야만 한 시간.
그때나,지금이나 배경없는 사람은 출세가 힘든 세상
정조의 활쏘기 실력이 눈에 들어 발탁되었는데.....
무관이란 문관의 지위와는 달랐다.
문관을 우대하는 시대풍조로 무관으로 일을 했지만 그는 한시도 소홀함이 없이 최선을 다했다고 한다.
-30대 중반까진 고민과 번민으로 세월을 보냈고...
-30대 중반부터 60대 후반까지 관직에 몸을 두고 일을 했었고...
-60대 후반부터 84세로 생을 마감할때가지는 가족과의 유대를 힘쓰고 손주를 돌봤으나
아내가 몇명이나 요절한 바람에 인생의 행복은 좀 먼거 같다.
거의 300년이 다 되어 가는 그 시대.
모든것이 힘들고 구하기도 힘든 세상에 매일 매일 일기를 쓰고 기록한건 대단한 끈기와 집념으로 높이 평가 받아 지금 경북 문화재로 보관중이란 것.
한 무관의 개인적인 일기긴 하지만....
그 시대의 모든것을 엿볼수 있는 것이라 소중한 자료가 분명할거 같다.
대단한 삶을 살다가 가신거 같은 <노상추>일기.
존경 스럽다.
후에 남겨지는 건 기록 뿐....
1746년 태어났으니 280년전의 사람으로 이조문화가 꽃피던 영정조 시대의 무관이다.
그는,
문관을 원했지만,그 당시엔 노론이 득세한 세상이라 과거도 맘대로 볼수조차 없었던 모양.
그는 지금의 선산이지만,그의 집안은 영남의 남인파라 힘이 없었던가 보다.
사색당파 싸움으로 임진왜란조차 선조에게 엉뚱한 보고를 한 바람에 왜군침략의 정보를 왜곡하곤 전쟁대비를 하지 않은 조정의 탓도 있지만....
율곡의 10만 양병설을 귀담아듣지 않았던 선조가 그런 화를 당한건 너무도 자명한 이치.
노상추는,
17세부터 죽기전인 84세까지 꼬박 꼬박 적은 일기가 68년간 지속되었단다.
대단한 집중력과 그시절의 힘든 기록.
18세기의 그 당시의 시대와 생활상을 엿볼수 있는 귀중한 자료다.
그가 과거에 급제하기 위해 서울로 오고 가고 한 것들이 10년으로 그게 논9마지기, 밭90마지기 돈 500냥을 쏟아부어 이룬것이 겨우 무과급제였다.
신분상승을 위해선 과거급제만이 유일한 선택.
개나기 봇다리를 메고 한양으로 과거를 보러가는데 꼬박 1 주일이 소요된것도 기록된 것.
합격에의 일념으로 10년을 들낙거렸으니 어지간한 의지와 재산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과거도 아무나
볼수 있는것 아닌건가 보다.
지금환산하면 5억?
지금도 시골에서 5억을 투자해 과거를 봐야 한다면 과연 끝까지 도전할 사람이있을까?
무과에 합격하고도 4년을 더 기다려야 했단다
19대 숙종때 너무 많은 인원을 선출한 바람에 다 소모될수가 없었던 탓.
무과에 합격하고도 그 기다림의 4년동안
한시도 시골에 머물수 없어 한양에 찾아가 소위 배경있는 양반들을 찾아가 읍소를 해야만 한 시간.
그때나,지금이나 배경없는 사람은 출세가 힘든 세상
정조의 활쏘기 실력이 눈에 들어 발탁되었는데.....
무관이란 문관의 지위와는 달랐다.
문관을 우대하는 시대풍조로 무관으로 일을 했지만 그는 한시도 소홀함이 없이 최선을 다했다고 한다.
-30대 중반까진 고민과 번민으로 세월을 보냈고...
-30대 중반부터 60대 후반까지 관직에 몸을 두고 일을 했었고...
-60대 후반부터 84세로 생을 마감할때가지는 가족과의 유대를 힘쓰고 손주를 돌봤으나
아내가 몇명이나 요절한 바람에 인생의 행복은 좀 먼거 같다.
거의 300년이 다 되어 가는 그 시대.
모든것이 힘들고 구하기도 힘든 세상에 매일 매일 일기를 쓰고 기록한건 대단한 끈기와 집념으로 높이 평가 받아 지금 경북 문화재로 보관중이란 것.
한 무관의 개인적인 일기긴 하지만....
그 시대의 모든것을 엿볼수 있는 것이라 소중한 자료가 분명할거 같다.
대단한 삶을 살다가 가신거 같은 <노상추>일기.
존경 스럽다.
후에 남겨지는 건 기록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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