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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동묘엘 간다.
고전과 현대가 어우러져 있는 기이한 물건들이 그곳엔 있다.
낯익은 그 길들을 거닐면 내가 어디에 서있는가?
50년대인가, 아니 60-70년대에 서 있는 것인가?
-소리가 들리는 거대한 벽시계.
-고금소총,한국야담전집, 삼국지 등등 고전의 서적들이 즐비하다.
이곳에 첨 날 델고 온 <돈심>씨.
스스로 자신의 목숨을 끊고 삶을 마감한 비정한 사람.
-앞으로 길어야 3 개월 정도밖에는 못 사실거 같으니 편히 그냥 쉬세요.
<대장암 말기>판정후,
혹시나 해서 서울대서 수술을 했으나, 늦었단 말을 듣곤 귀가하자 마자 긴 장문의 유서를 써놓고
가버렸던 <돈심>씨.
서울의 결혼식장과 연결된 하객 모으기를 하는것이 직업이 되어버린 딸의일.
아버지도 덩달아 딸의 사업을 돕기위해 결혼식장에서 <주레>일을 하셨었다.
나와 절친 ㅎ 도 함께 가짜 하객으로 인원수를 채우곤 일당 12000원과 식사하곤 오는게 일.
-절대적으로 좋은 품질의 양복을 입을것과 넥타이를 하고 나올것.
-헤어스타일은 늘 단정한 모습으로 와야 한다.
-반드시 구두를 신을것.
이런 조건을 채워야만 그런 일도 할수 있어 그 심사는 <돈심>씨의 딸이 결정했다.
나나, ㅎ 는 아버지 친구들이라 그냥 무사통과 되었지만, 그게 쉬운건 아니었다.
단 한 시간의 식장서 머물고 식사하고 일당 받고 나오면 일과 끝.
퇴직후, 일정한 일없는 나 같은 사람들이 딱 맞는 스타일이라 노느니 그런 일을 했지.
한 3 년 정도 한거 같다,.
<돈심>씨의 자살만 없었어도 아마도 더 했을거 같다.
-거긴 즐비한 양복점,ㅡ 신발들.
거기서 구입했다.
시중가의 1/3정도면 살수 있는곳이 <동묘>장터.
그때 구입했던 양복들이 아마도 수십벌은 된거 같다.
그때 그때 맞춤양복처럼 입고 다녀야 하는 것이라 자주 구입했지만..
후에, 그걸 처치 하느라 더 힘들었다.
지금은,
양벌 딱 4벌과 코트 두벌 뿐...
다 버렸다.
-누가 평일에 양복을 입는가.
<동묘>가면 우리들 단골의 그 양복집.
지금도 그곳에서 아줌마가 일을 하고 있다
-안녕하세요? 여전히 사업 잘 되시죠?
-커피 한잔 하고 가세요 요즘 어디 잘 되는거 있어요 그냥 버티고만 있어요.
참 아저씨 보면 그 분이 생각이 납니다 좋은 분였는데...
-양복을 자주사서 그런거 아닙니까?
-물론, 단골인것도 있지만 좋았잖아요.
조금 견디시지 왜 스스로 자살을 해요? 물론 낫지 못한단 애기니까 그럴수 있지만 그래도 끝까지
버텨보시곤 했어야죠.
-오죽했음 그렇겠어요 지금도 눈에 선해요 저도 ...
-그러게요 늘 두분이 오셔서 우리집에서 차도 마시고 놀다가곤하셔서 좋았는데...
-10년이나 지난 것을 아직도 기억하시니 대단해요.
-잊다니요? 나무 좋은분이라 그런거 같아요 ..
작년,
돈심씨의 딸의 결혼식장엔 갔지만, 부모없는 그 자리가 너무도 넓어보였고 슬퍼 보였다.
-아빠 몫까지 오래 오래 사세요 행복하게요.
-네 아저씨 고맙습니다.
그 분은 가셨지만,그래도 절친으로 정이 든 사람의 딸인데 어떻게 외면할수 있는가?
남자의 의리, 그건 남자의 얼굴인걸...
<동묘>곳곳을 다녀도 그 분이 더욱 생각이 난다.
바로 엊그게 같기만 한데, 어언 십년이 넘었네..
고전과 현대가 어우러져 있는 기이한 물건들이 그곳엔 있다.
낯익은 그 길들을 거닐면 내가 어디에 서있는가?
50년대인가, 아니 60-70년대에 서 있는 것인가?
-소리가 들리는 거대한 벽시계.
-고금소총,한국야담전집, 삼국지 등등 고전의 서적들이 즐비하다.
이곳에 첨 날 델고 온 <돈심>씨.
스스로 자신의 목숨을 끊고 삶을 마감한 비정한 사람.
-앞으로 길어야 3 개월 정도밖에는 못 사실거 같으니 편히 그냥 쉬세요.
<대장암 말기>판정후,
혹시나 해서 서울대서 수술을 했으나, 늦었단 말을 듣곤 귀가하자 마자 긴 장문의 유서를 써놓고
가버렸던 <돈심>씨.
서울의 결혼식장과 연결된 하객 모으기를 하는것이 직업이 되어버린 딸의일.
아버지도 덩달아 딸의 사업을 돕기위해 결혼식장에서 <주레>일을 하셨었다.
나와 절친 ㅎ 도 함께 가짜 하객으로 인원수를 채우곤 일당 12000원과 식사하곤 오는게 일.
-절대적으로 좋은 품질의 양복을 입을것과 넥타이를 하고 나올것.
-헤어스타일은 늘 단정한 모습으로 와야 한다.
-반드시 구두를 신을것.
이런 조건을 채워야만 그런 일도 할수 있어 그 심사는 <돈심>씨의 딸이 결정했다.
나나, ㅎ 는 아버지 친구들이라 그냥 무사통과 되었지만, 그게 쉬운건 아니었다.
단 한 시간의 식장서 머물고 식사하고 일당 받고 나오면 일과 끝.
퇴직후, 일정한 일없는 나 같은 사람들이 딱 맞는 스타일이라 노느니 그런 일을 했지.
한 3 년 정도 한거 같다,.
<돈심>씨의 자살만 없었어도 아마도 더 했을거 같다.
-거긴 즐비한 양복점,ㅡ 신발들.
거기서 구입했다.
시중가의 1/3정도면 살수 있는곳이 <동묘>장터.
그때 구입했던 양복들이 아마도 수십벌은 된거 같다.
그때 그때 맞춤양복처럼 입고 다녀야 하는 것이라 자주 구입했지만..
후에, 그걸 처치 하느라 더 힘들었다.
지금은,
양벌 딱 4벌과 코트 두벌 뿐...
다 버렸다.
-누가 평일에 양복을 입는가.
<동묘>가면 우리들 단골의 그 양복집.
지금도 그곳에서 아줌마가 일을 하고 있다
-안녕하세요? 여전히 사업 잘 되시죠?
-커피 한잔 하고 가세요 요즘 어디 잘 되는거 있어요 그냥 버티고만 있어요.
참 아저씨 보면 그 분이 생각이 납니다 좋은 분였는데...
-양복을 자주사서 그런거 아닙니까?
-물론, 단골인것도 있지만 좋았잖아요.
조금 견디시지 왜 스스로 자살을 해요? 물론 낫지 못한단 애기니까 그럴수 있지만 그래도 끝까지
버텨보시곤 했어야죠.
-오죽했음 그렇겠어요 지금도 눈에 선해요 저도 ...
-그러게요 늘 두분이 오셔서 우리집에서 차도 마시고 놀다가곤하셔서 좋았는데...
-10년이나 지난 것을 아직도 기억하시니 대단해요.
-잊다니요? 나무 좋은분이라 그런거 같아요 ..
작년,
돈심씨의 딸의 결혼식장엔 갔지만, 부모없는 그 자리가 너무도 넓어보였고 슬퍼 보였다.
-아빠 몫까지 오래 오래 사세요 행복하게요.
-네 아저씨 고맙습니다.
그 분은 가셨지만,그래도 절친으로 정이 든 사람의 딸인데 어떻게 외면할수 있는가?
남자의 의리, 그건 남자의 얼굴인걸...
<동묘>곳곳을 다녀도 그 분이 더욱 생각이 난다.
바로 엊그게 같기만 한데, 어언 십년이 넘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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