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ngple Diary

통플다이어리 - 마음을 나누는 인터넷 일기장

일기장
2025.06
11
수요일

순정시대

컨텐츠 정보

  • 작성일

본문

학교 졸업후,
내일의 꿈을 꿀수 없는 시골생활이 지겹게도 탈출하고 싶었던 차에 이모할머니의 방문은 희망을 심어준
계기가 된거 같다.
-거긴 조금만 성실히 일을 하면 직업도 얻을수있고 , 신앙속에서 사니 얼마나 평온한지 모른다.
여기서 왜 살아야 하냐?

무신앙인 부모도 그런 이모할머니의 말씀에 신뢰가 갔을까?
신앙촌 입촌에 반대하질 않으셨다.
-남자가 고향을 떠나면 다신 돌아올 생각을 하면 안돼.
성공하란 애긴거 같은데 왜 그렇게 가슴에 깊이 박힐까?

<신앙촌>은 결코 나의 이상향은 아니었고  내 꿈을 이룰수 있는곳도 아니었다.
자기의 모든 재산을 정리하고 내세의 영광을 그리며 신앙속에서 살아가는 곳.
자신의 직업은, 결국은 자신의 헌신으로 신앙촌 발전에 도움을 줄지언정 수입과 연결되는 직업은 아니었다
<신앙촌 안내사무소>에 근무한게 1년4개월동안 그때의 봉급이 800 원?
물론,
숙식은 해결되어 혼자선 별로 쓸 용도는 없어도 그 당시의 800원이면 지금은 얼마나 될까?
80만원정도 될려나?
신앙의 이름으로 노동력을 착취하는 것
그거 였던거 같다.
<돈독한 신앙인>으로 어떻게 급료가 적다고 투정을 할수 있는가?
모든게 주님 사업인데....

안내사무실 곁에는,
탁구장이  몇개 있었다.
직원들도, 인근의 주민들도 소정의 이용료로 이용할수 있는 스포츠 공간.

내 근무때,
아마도 여고 1년생정도의 여학생이 탁구를 치기위해 사무실로와 라켓을 달라고 한다.
갸녀린 얼굴에 균형잡힌 미모의 여학생 였다.
-어디사세요?
-여기 바로옆 A동입니다.
거긴 신앙촌에서 젤로 부자들만 사는 특급지역였다.
위치 좋은 곳에 넓직한 단독주택으로 최고의 입지.
 그 후로도 그 학생은 늘 등교할땐 우리사무실옆으로 다녔다.
<인화여고>였던가 보다.
근무때는 등교시엔 늘 그녀를 보기위해 밖에서 서 있었다.
그 학생얼굴이 크로즈 엎되어 왜 그렇게 이뻐 보였을까?
마주치면 목례를 하곤 지나치는 다소곳한  그  여학생이 기다려지곤 했다.
그 후로도 가끔 사무실로 찾아와 탁구치기위해 라켓을 빌려달라고 오곤했다.
사실,
그땐 신앙촌의 시온중고등학생들이 탁구로 전국의 명성을 얻고 있었지.

군 입대전까지 머문 그곳.
겨우 고1년정도의 이성에게 첫 사랑을 느낀것일까?
가녀린 몸매에 다소곳이 고개를 숙이고 걷는 모습이 그렇게도 이뻐보일수 없었다.
그 시절이라 그렇게 예뻐 보였나?
그녀가 탁구 라켓을 빌려달라 했을때 왜 이름도 못 물어 봤을까?
내 얼굴이 먼저 발개져 버린 20대초반의 숙맥인 나.
긴 세월이 흘렀어도 그 여학생의 얼굴은 지금도 생생하다.
그때가,
내 순정시대였던가?

관련자료

댓글 3 / 1 페이지

무지개님의 댓글

첫사랑인가요!!! ㅎㅎㅎ
풋풋하고 순수한~~~
신앙촌은 처음 들어보는 말
추억은 아름답죠!!!
월요일 한주일의 시작입니다.
오늘도 건강하게 즐겁게요. 낭만님^^

낭만님의 댓글

신앙인들만 모여사는 마을 신앙촌으로, 당시는 대단한 특급지역였어요
내 나이또래 사람들은 다 알죠 신앙촌의 명성.
객지생활 첫 발을 내딛는 곳이 그곳였어요
다소곳하고 약간 수줍어하는 그 여학생이 참 이뻐보엿죠 신분적으로도 위치로도 상대가 되질 않은
그 특급지역의 a 주택은 최고의 입지였으니..감히 보기만 했어요 가슴은 쿵쿵 거렸고...
첫 사랑의 순정인가 보아요...나만의 짝 사랑..

무지개님의 댓글

신앙촌 그런거였군요.
ㅎㅎㅎㅎ 순정, 짝사랑이란 글에 미소가 지어지네요.
누구나 한번쯤 있었던....
보고싶고, 그리운 얼굴이 있죠^^
편한 저녁시간 되세요.^^
알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