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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장
2025.07
17
목요일

신해균 중대장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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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 시절,
간염으로, 원주 후송병원에 입원중였을때, 소속 중대장이셨던 <신 해균(대위)>님이 병문안오셨다.
홍천에서도 치료를 받다가 의무중대 군의관의 권유로 원주까지 후송온것.
그 부대에 전입온지 얼마되지도 않아서 <c형 간염>으로  입원했으니 중대입장에선 결코 반갑지 않는
존재였으리라.
병참 참모부의 내 보직도 비워둔채 퇴원하기만 기다리고 있었단 사실도 들었다.
내 밑에 들어와 한참 일을 하던 나의 조수인졸병이 그 일을 하는데 얼마나 힘들까 생각하면 미안하기도 했지만, 어쩔수 없는 일.

<병참중대 중대장>였던 신 해균 님은 그 당시 아마도 퇴임을 얼마 남지 않은 연세로 기억된다.
말년이니 편히 쉬다 퇴임하란 의미로 편한 곳에 배치했으리.

신 중대장님은, 군인답지 않은 온화한 말투와 인정많은 모습으로 잊혀지지 않는다.
군 상사라기 보다는 시골의 친척형님같은 모습으로 모든 중대요원에게 다정하게 대해주셨다.

-어 잘 있었나? 그래도 보니 반갑구나 어서 퇴원해야 하는데 어쩌냐?
병참부 일도 바쁜가 보더라만...
-화랑!
 중대장님 여기까지 웬 일이십니까?
-부하가 입원해 있는데 와 본건데 뭘 그리 놀래냐?
네가 걱정되어 온거다.

내 손을 잡고서 흔들면서 빨리 쾌유를 빌어주던 그 모습.
소속 중대장 아닌 시골의 사촌형님이 병문안오신거 같은 착각을 이르키게 한다.
그 당시에,
중대장이 병문안 온다고? 그것도 홍천서 먼 원주의 병원까지는 상상도 못할 일.
얼마나 고맙던지 눈물이 날 지경.
매일 파리한 안색으로, 병실에 눠서 치료받는게 하루의 일과의 원주 후송병원.
어떤 환자는 간경화로 변해 배가 불룩해서 생명이 위험해 보이기 까지 하는 모습.
비록 나이든 중대장이지만, 군복을 입은 중대장님의 늘름한 모습이 그렇게 멋져 보였다.
전입온지 얼마 되지도 않는 졸병 일등병 위치.

후에, 퇴원했을때 찾아뵙고 감사인사를 올린게 기억이 새롭다.
조금 생각이 있었다면 중대장님을 어떤 보답이라도 했어야 했는데 아무런 보답도 못하고 헤어진것이
너무도 아쉽다.

-아, 군에도 인정이 있고 의리가 있고 사랑이 있구나
느꼈다.
다시 퇴원후,원위치에 복귀한것도 내가 운이 좋은건가 아님 상사들의 배려였을까?
업무때문에도, 바쁜 일정때문에도 다른 병을 지원받아 내 자리를 채웠을것은 당연한 일인데,,,
그것도 출납관 조 은구 소위의 배려란 것도 후에 알았다.

세상사는, 사람과 사람의 얽혀지면서 맺어지는 어울림.
인간관계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알수있다.
-나를 배려해준 것을 보답한것은  기대를 해준 것에 대한 더 많은것을 주는것.
성실과 노력으로 그 배려에 대한 갚는것 아닐가.

갑작스럽게 병문안 오신 <신 해균 중대장님>
나를 위문온다면 나의업무와 가까운 출납관이 왔어야 하는데 소속만 중대일뿐  일은 병참부의 업무라
<조 은구 출납관>이 와야 맞지만 바쁜일정으로 상상못하지.

따스한 인간미에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감동으로 기억된다.
-미소띤 그 인자한 모습은 군인의 얼굴이 아니다.
어찌 망각하겠는가?
어느곳에 사시든지 건강하게 사셨음 빈다.
주는 사람은 잊어도 받는 사람은 잊으면 안된다는 것.
그게 양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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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 / 1 페이지

무지개님의 댓글

"주는 사람은 잊어도 받는 사람은 잊으면 안된다는 것.
그게 양심이다." 명언이네요.^^
남자들은 군얘기가 끝도 없다면서요.ㅎㅎㅎ
나도 한때는 여군이 되고싶었는데.....
옷이 멋있었어요.^^

낭만님의 댓글

남자의 군대3년은 자신의 인생의 전환점같고 젤로 ㅡ큰 변화를 격
어서 그런거 같아요 군대 아님 해보지못한 별스런 일들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드는 것이 군대 입니다 여군으로 오셨음 잘 버텨셧을거같은데.
성격이 화끈해서 잘 적응할거 같아요 진급도 잘 할거 같고,,,한때의 꿈였군요 여군 멋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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