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ngple Diary

통플다이어리 - 마음을 나누는 인터넷 일기장

일기장
2026.01
04
일요일

잊을수 없는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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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 중학교 동창이면서 두살 연상이라 친구라기 보담 속이 꽉찬 형처럼 지냈던 <천>
장흥이 고향인지라,거리가 먼데도 그 학교에 다녔던걸 보면 유일한 <장학생선발>제도가 있었던
탓였던거 같다.
장흥서 그곳까진 통학은 어려운 것이니 아마도 학교 근처의 영강동부근서 자취를 한거 같다.
그가,
180명중에 2등, 난 4등 합격했다.
둘은, 왠지 조금은 자신들이 선택받은 사람처럼 생각했다.
그 인원중에 합격권이 쉽지는 않지 않는가.
물론, 그 학교가 전남에선 알아주는 일류는 아니지만,돈없이 다닌단 것이 매력있는 곳 아닌가?

같은 반이고, 동창이면서도 2살정도 연상은 존댓말을 썼었다.
그런 친구가 몇명 있었다.
<천>형은, 늘 내가 배울것이 많은 사람였다.
성격이 차분하기도 하고,.공부도 잘 했지만,글씨 솜씨가 좋아 엄청 잘 썼다.
그 당시는, 노트 필기가 모두 펜으로 쓰던 시절이라 잘 쓴 글씨는 부러움의 대상였고
롤 모델였다.
당시의 노트를 보면 이 형의 글씨체를 많이 모방한거 처럼 비슷했다.
그 당시엔, 한문과목은 필수과목이라 엄청 어려운 과목중 하난데 어딜 서당이라도 다녀서 그럴까?
많이 알았고 배웠다.

3년간을 흔들림없이 친형처럼 지냈던 사이가 그는 서울로 진학했다.
-나 성동고를 지원했어 이젠 떨어져야 할거 같다.
넌 서울은 못 오겠지? 우린 떨어져도 서로 편지 왕래하자
서울엔 그 누구도 내가 잠을 잘수 있는 가까운 친척없는 내겐 그의 애긴 엄청 부러웠고 한편 서운도 했다.
그 당시엔, 서울서 학교 다닌단 것은 지금의 외국유학정도로나 되었을까.
그는 서울로, 난 지방에 쳐지고 만 위치.

그 학교에 다님서도 우정잊지 않고 편지를 보내곤 했다.
그리곤 그 편지엔 늘 반송우표가 동봉되어 있었다.
답장할땐, 이 우표를 붙여 답장해라 이런 암시.
가난해서 서울을 꿈도 못꾸고 있는 내가 불쌍해 보였던건가.
<천>형도 자신의 형님이 서울서 거주하지만, 넉넉한 집은 아니라 던데 그런 정성표시는 감동였다.
물론, 우표보내지 말라곤 했지만 늘 보냈다,
동창끼리 이런 깊숙히 마음을 열고 따스함을 나누는 절친 별로 없다.

군 제대후,
서대문 구치소 옆에 있는 <교도관 교육관>으로 날 면회 온게 1972년 여름.
교육생신분으로 외출이 불허되어 둘이서 차 한잔 못 마시고 담을 약속해야했다.
그는, 대학졸업후 회사에 취업되어 있는 직장인 신분.
그게 그 와의 인연이 끝이다.
전화조차 없던 시절이라 편지뿐여서 연락이 두절된것.

동창도, 고향의 지인들도 서울로 이사간후 모른단다.
장흥읍 동동리14번지가 그의 고향주소지라  현직이장과의 통화도 같은 내용이다.
그 집은 이미 매매되었고,친척도 없어 오질 않는단 애기뿐...
허전하다.

군입대전엔, 마포구 대흥동에 살때 짜장면을 사주곤, <대흥극장>서 영화관람까지 시켜줬던 절친.
지금도 눈을 감으면 그의 얼굴이 뚜렷하게 크로즈 엎되어 아픔으로 다가선다.
-어찌 잊을까?
쉬는 시간엔, 영산강 물줄기 바라봄서 미래의 청사진을 그리던 그리운 시절을...
친구같지 않는 친형같았던 <천>형......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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