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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장
2026.03
02
월요일

시온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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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물간장>
어제, 와이프가 이런 양조간장 몇병을 갖고 온다.
지인들끼리, 아는 가게서 샀단 애기.
-아니, 유명간장도 많은데 이건 첨 들어본 이름인데 왜 샀어?
-아냐, 그 유명한 신앙촌 간장이야...엄청 유명했다던데...??

상표라벨을 살펴봤더니, 맞다.
제조공장이, 부산 광역시 기장군 기장읍 <생명물 식품(주)
소사 신앙촌에서, 명성을 떨쳤던 <zion 간장>
-신앙촌 간장, 신앙촌 이불, 신앙촌 비닐제품은, 그 당시에 신앙촌의 명성을 떨치게 했던 제품.
일반 시중가 보담은 아마도 거의 배가 되었을것이지만, 우수한 품질로 한 동안 명성을 이어간 제품이다.
신앙촌이란 냄새를 없애기 위해 <시온간장>을 <생명물 간장>으로 바꾼것일까?

소사 1 신앙촌, 덕소 2신앙촌, 그리고 기장의 제 3신앙촌으로 늘 그곳으로 가는 사람을 부러워 했던
곳이 바로 부산기장였다.
교주 ,박 태선장로가 소사는 비좁아 제2 제3의 신앙촌을 건설해 교세를 확장한거라 본다.
허나, 그가 죽고선 자식들 간에 불화가 심해져 교세는 쇠퇴의 길을 밟았다한다.
-지금도 신앙촌이라고 명명하는것인가?
딱 2년간 머문 그곳을 다신 찾지 않아서 그 후는 잘 모르지만 아마도 그런 이름을 사용하지 않은거 같다.
소사 5만제단은 어떻게 변했을까?
외지인들이 땅을 사들여 아파트 단지로 변했단 애긴 들었지만... 잘 모른다.

19세의 꿈 많은 내가 처음으로 찾았던 곳 <신앙촌>
허나, 이모 할머니의 말과 다르게 그곳은 결코 내 이상향도 꿈을 펼칠곳도 아닌것을 후에 알았다.
그 2년간 머문 신앙촌.
방황과 번민의 시간만 갖고 있다가 군 입대로 종지부를 찍었던 그곳.
2년간의 무위도식의 날들이 결코 잊혀지지 않은게 많은 생각을 갖게 했고, 미래의 꿈을 펼치기엔
가진게 없었다.
신앙촌은, 결코 모든 사람들이 공평하게 골고루 잘 사는 곳은 아니었다.
입주시에, 더 많은 돈을 갖고와야만 더 좋은 집과 혜택을 누릴수 있었다.
가장 돈 많은 사람이 거주하는 a동,가난한 사람이 사는 f동으로 구분했다.
신앙속에서도,빈부의 차이는 여전했다.

-비닐공장에서 일했고, 그 후에 신앙촌 제품을팔러 춘천에서 몇 개월을 보냈고 돌아와 지인의 소개로
<신앙촌 안내 사무소>에서 군 입대전까지 머문 직장.
말이 직장이지, 신앙이란 이름으로 거의 봉사수준의 급여.
<신앙인>이란 말에 그 누구도 형편없는 급여를 애기할수도 없었다.
낮엔, 안내원으로 밤엔 관내 경비원으로 헌신했던 그 신앙촌 생활.

한때의 꿈을 안고서 달려갔던 그곳 신앙촌.
2년간 아무런 결실도 못맺고 나온곳이지만, 잊혀지지 않은게 왜 그럴까?
2년간의 시간들이 참으로 많은 생각을 했고 번민을 했고, 미래의 청사진을 참으로 많이도 그려본곳.
-새벽 4시경이면 5만 제단에서 고요히 울러 퍼지는 찬송가.
그 은은한 소리는 지금도 귀에 쟁쟁하다.
신앙촌 간장을 보니 아득한 그 시절을 회상하게 된다.
한때 안내원의 몸으로 한 솥밥을 먹었던 동료직원들.
다 어디서 살고 있을까?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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