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정보
- 작성일
본문
-어제,
딸 결혼날짜 알려줘야죠, 언젭니까?
-아냐,애가 죽은거 같아 지금 바빠 후에 연락해줄께.
외가로 아재뻘 되는 <재운>아재와의 짧은 통활한건 어제 6시경.
외 할아버지의 동생의 아들이 <재운>아재니까 곧 어머니의 사촌동생이다.
외할아버진 , 딸만5을 둔 탓에 동생아들 <재운>을 외할아버지의 양자로 올렸단다.
글쎄?
그 시절은 아들이 없으면 가까운 친척을 양자로 올려놨지만, 그게 무슨 의민가?
제삿상이나 받을려는 의미였나?
1시간 정도 지나서 걸려온 전화.
2주전에, 아재생일날에 혼자살면서 결혼 운운하던 애가 와서
-아빠 죄송해요 그 결혼 파혼했어요 서로가 성격이 맞지 않아 않기호 했어요.
고민의 흔적이 아픈몸에 보이더란다
훌쭉 마른 체격에 걸음조차도 정상적인 보행이 어렵게 걷기에,
-헤어진건 어쩔수 없지만, 그 충격이 큰거냐? 네가 더 아파 보인다.?
-아닙니다 그냥 밥맛이 없어서...
47세인 이 딸이 어떻게 결혼을 한다해서 축하해주면서 꼭 날짜 잡으면 연락하기로 했는데...
1주일 이나 되어도 전화가 안돼 그 동생에게 연락해 한번 가보라 해서 문을 따고 가보니
반듯히 눠 주검으로 발견되었단 애기.
-이 무슨 청천벽력인가?
25년간을 <간경화>로 병원으로 다님서 치료를 했는데 결국 이 병으로 가고 말았다.
파혼의 충격였을까?
그 긴 시간을 병마와 싸워오면서 삶에의투지를 키워 왔는데 갑자기 가다니..
6호선태릉입구역 영안실.
수원의 형님은 근무관계로 갈수 없고 혼자서 갔다.
1시간 정도의 소요되는 거리지만 서울지하철에서 이 정도는 결코 가까운 거리가 아니다.
이 노선이 영란이가 다녔던 <서울여대>노선이다.
한번도 가보지 못한 서울여대 교정을 영란이 졸업식날 가보곤 엄청 미안했다.
화곡동서 이 보다 더 먼거리를 만원 전철을 타고 다님서 얼마나 고생했을까?
단 한번도 수고한단 말 해보지 못한것이 미안했다.
1시반경 도착한 영안실.
아들 직장지인들이 와서 와글거릴뿐 어떤 낯익은 얼굴은 보이질 않는다.
경사 보담 애사는 가는게 더 반갑고 기본인데..
-일종인 왔어요?
-아직 오질 않았어 모르지 올런지는..?
-아니 아재동네 사는데 왜 않아요? 사촌인데?
바로 중화동 한동넨데도 데면데면하게 지낸단 애긴 들었지만 설마?
거의 2시간 정도나 대화하면서 앉아 왔는데도 그 친구는 보이질 않았다.
바로 지척인데...
그 사람의 본 모습을 아는건 이런 애사거나 어려움을 당했을때의 그 자의 처신을 보면 안다.
본 모습을 보이거든...
방명록엔, 형님과 나의 이름은 올려야 한다.
후에, 그게 증표거든....
사람노릇한단게 쉽지 않다.
물론, 오지 않고 부의금만 보내도 기본메너는 지키지만...
이 경우는 다르지 않는가?
47세의 병든 딸이 그것도 혼자 죽었다는 기막힌 사연 아닌가?
그 사람의 고마움을 아는건 이런 애사에 온 사람 절대 잊혀지지 않는다.
-아제? 힘든 시간 보내시고, 그렇다고 식음전페하고 그러지 말고 건강을 챙시세요
후에, 저와 소주 한잔 나눕시다.
-조카 정말 고마워 그래 연락할께..
내가 해치워야 할 의무를 이행한거 같아 오는길이 가슴이 뿌듯하다.
-보통인간으로 산다는건 결코 쉽지 않다.
딸 결혼날짜 알려줘야죠, 언젭니까?
-아냐,애가 죽은거 같아 지금 바빠 후에 연락해줄께.
외가로 아재뻘 되는 <재운>아재와의 짧은 통활한건 어제 6시경.
외 할아버지의 동생의 아들이 <재운>아재니까 곧 어머니의 사촌동생이다.
외할아버진 , 딸만5을 둔 탓에 동생아들 <재운>을 외할아버지의 양자로 올렸단다.
글쎄?
그 시절은 아들이 없으면 가까운 친척을 양자로 올려놨지만, 그게 무슨 의민가?
제삿상이나 받을려는 의미였나?
1시간 정도 지나서 걸려온 전화.
2주전에, 아재생일날에 혼자살면서 결혼 운운하던 애가 와서
-아빠 죄송해요 그 결혼 파혼했어요 서로가 성격이 맞지 않아 않기호 했어요.
고민의 흔적이 아픈몸에 보이더란다
훌쭉 마른 체격에 걸음조차도 정상적인 보행이 어렵게 걷기에,
-헤어진건 어쩔수 없지만, 그 충격이 큰거냐? 네가 더 아파 보인다.?
-아닙니다 그냥 밥맛이 없어서...
47세인 이 딸이 어떻게 결혼을 한다해서 축하해주면서 꼭 날짜 잡으면 연락하기로 했는데...
1주일 이나 되어도 전화가 안돼 그 동생에게 연락해 한번 가보라 해서 문을 따고 가보니
반듯히 눠 주검으로 발견되었단 애기.
-이 무슨 청천벽력인가?
25년간을 <간경화>로 병원으로 다님서 치료를 했는데 결국 이 병으로 가고 말았다.
파혼의 충격였을까?
그 긴 시간을 병마와 싸워오면서 삶에의투지를 키워 왔는데 갑자기 가다니..
6호선태릉입구역 영안실.
수원의 형님은 근무관계로 갈수 없고 혼자서 갔다.
1시간 정도의 소요되는 거리지만 서울지하철에서 이 정도는 결코 가까운 거리가 아니다.
이 노선이 영란이가 다녔던 <서울여대>노선이다.
한번도 가보지 못한 서울여대 교정을 영란이 졸업식날 가보곤 엄청 미안했다.
화곡동서 이 보다 더 먼거리를 만원 전철을 타고 다님서 얼마나 고생했을까?
단 한번도 수고한단 말 해보지 못한것이 미안했다.
1시반경 도착한 영안실.
아들 직장지인들이 와서 와글거릴뿐 어떤 낯익은 얼굴은 보이질 않는다.
경사 보담 애사는 가는게 더 반갑고 기본인데..
-일종인 왔어요?
-아직 오질 않았어 모르지 올런지는..?
-아니 아재동네 사는데 왜 않아요? 사촌인데?
바로 중화동 한동넨데도 데면데면하게 지낸단 애긴 들었지만 설마?
거의 2시간 정도나 대화하면서 앉아 왔는데도 그 친구는 보이질 않았다.
바로 지척인데...
그 사람의 본 모습을 아는건 이런 애사거나 어려움을 당했을때의 그 자의 처신을 보면 안다.
본 모습을 보이거든...
방명록엔, 형님과 나의 이름은 올려야 한다.
후에, 그게 증표거든....
사람노릇한단게 쉽지 않다.
물론, 오지 않고 부의금만 보내도 기본메너는 지키지만...
이 경우는 다르지 않는가?
47세의 병든 딸이 그것도 혼자 죽었다는 기막힌 사연 아닌가?
그 사람의 고마움을 아는건 이런 애사에 온 사람 절대 잊혀지지 않는다.
-아제? 힘든 시간 보내시고, 그렇다고 식음전페하고 그러지 말고 건강을 챙시세요
후에, 저와 소주 한잔 나눕시다.
-조카 정말 고마워 그래 연락할께..
내가 해치워야 할 의무를 이행한거 같아 오는길이 가슴이 뿌듯하다.
-보통인간으로 산다는건 결코 쉽지 않다.
관련자료
댓글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