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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장
2026.04
25
토요일

영산포, 추억의 고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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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산포 아가씨>를 우리들 단톡방에 초딩친구 <애>가 올렸다.
오래전의 전설적인엘레지의 여왕 이미자의 히트송이지만, 오랫만에 들어보니 지난날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온다.
영산포, 잊혀지지 않은 나의 10대시절의 추억의 고향.

-넌,다른학교 진학하지 말고,영산포로 지원해라.
거긴 사립이지만, 너 처럼 어려운 가정의 애들이 몰리니 넌 그래도 네 실력이면 충분히 합격할수 있을거 같다 선생님 말듣고 거길 지원해, 알았지?
6학년 담임인 <김 동선>선생님의 배려로 듣도 보도 못한 생소한 그곳에 지원했다.
나의 처지를 생각해 고급정보를 접해 응원해 주신 김 동선담임선생님.
그런 배려가 진정한 스승의 모습 아닌가?
제자의 처지를 알고, 적정하게 현실을 파악하고 ,좌절에  빠지지않게 이끌어주시고 배려해주시는 속 깊은  마음을 처음엔 조금 섭섭했다.
경쟁상대 였던 <강>은,
그 지역의최고를 자랑한광주 서중을 지원을 권 하시곤 난 한참 뒤 떨어진  존재감없는 학교에 가라하니 섭섭했었지만ᆢ.
그런 배려를 모르곤 강을 편애하는듯해 보여 섭섭했지만 어린 나이라 그랬다,
지금 생각해보면 얼마나 심사숙고해서 권유했던걸 알수 있다.
나의 처지에선, 광주로 다닐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지.
그래도 강은, 우리 보담은 더 여유로운 가정였지,
아버지가 고향의 말단 공무원였으나 조금은 더  여유있어 보여 그랬던거 같다.
영산포엔 그 당시엔 다른학교선 없었던 장학생 제도가 있어 지원하란뜻였다.

당시 선생님의 말씀은 , 정의다.
감히 토를 달수도 없었던 때라 각각 그렇게 지원했다.
강도 나도 결국은 담임선생님 의도대로 합격을 했다.
-광주 서중과 영산포 중, 어떻게 비교를 할수있는 수준인가?
수재들이 몰리는 광주서중과, 영산강 변의 초라한 신설된 변두리강변의 사립중학교
초등학교 졸업식날,

<강>은 180 명중 유일하게 광주서중에 합격한 탓에 온 친구들의 박수를 받으며 당당하게
최고의 상 <전남 도시사>상을 수상했다.
그가 부럽기만 했지만, 어쩔수 없는 현실.
그래도 난 선생님의 배려때문에 장학생으로 합격한거 아닌가?
나주엔, 그런 제도가 없었다.
내 돈 없이 다닌단자부심
그런것에 나만의 자부심과 긍지를 갖고 어깨를 폈다

동네서, 영산포까지는 16키로는 될거 같다.
나주까진 걸어서 통학하곤,거기선 다시 버스로 가야 한 거리라 때론 짜증도 나고 힘든거리지만  어쩔수없는 현실 아닌가?,
<3000리 자전거>가 통학하는데 유일한 교통수단.
그런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친구들이 부럽지만, 어떻게 자전거를 사달라고 할수 있는가?
2학년때, 서울의 매형이 보내준 중고자전거 .
그리고 중고제품의 손목시계가 너무도 반갑기만 했다.그런매형의 존재ᆢ
한때는  큰힘이 되어주셨다.

사실, 그 어린나잇대의 10대때.ㆍ
하루  왕복거리 32키로의 거리는 무리였지만 별로 힘들지 않게 다녔었지.
수업중 휴식시간에, 영산포 역 부근의 단팟죽집.
달디단 그 맛은 잊을수 없는 맛으로 가끔 친구들과 가긴 했지만 호주머니 사정으로 자준 못갔지만
배고픈 시절에 그 달디단 <영강동 단팟죽>을 어찌 잊으랴...

-이번주 토요일은, <산색시>영화 관람을 간다.
규율선생님의 영화관람은 그 한주가 들뜨게 하기 충분했다.
'그 시절에, 영화말고 볼거리가 뭣이 있는가?
규율담당이신 김 종호 선생님은, 늘 관람을 시키기 전에 미리 보시고 결정하셨다.
우리에게 그 스토리를 대강 애길 해주신걸 보면 과연 이게 관람할수 있는것인가?
판단으로 그랬던거 같다.
그 선생님의 시간만 되면 모두들 흥분해 들떠 있었다.
<단체 영화관람>애기 나올까봐...
-두만강아 잘 있거라.
-빨간 마후라.
-귀신잡는 해병.
-주유천하
지금 생각해도 그 화면들이 선명하게 그려진다.
영화보러 줄지어, 영산포 다릴 건너야 <영산포 극장>이 있어 가는 거리지만 먼 거리는 아니다.
다릴 건너자 마자 코에 스미는 비릿내와 새우젓냄새의 강렬함.
그때나, 지금이나 그곳은 목포에서 흑산도에서 건진 홍어나 생선들이 이곳으로 모였나보다.
생선은 한 마리도 보이지 않는 나주시내와, 다릴 건너자 마자 스미는 그 생선비릿내와 길거리에  줄지어
널려있는 각종 생선들의 좌판.
그 냄새가 너무 싫어 코를 막고 걸었지만...
그 비릿내 진동하던  영산포거리가, 그립다.

가끔은, 쉬는 시간에 푸른 영산강 물줄기를 바라보면서 앞날의 청사진을 그리었던 절친들
<천식><경식><수용><용만><창호>...
학교 옆으로 길게 기적을 울리면서 달리던 기차소리가 싫었지만...
그 정다운 친구들 다들 어디서 어떻게 살고들 있을까?
나같이 한두번은, 그 어린 시절의 영산포 거리를 회상하면서 그리워 할까?

영산포는, 나의  10대 시절에 많은 꿈과 희망을 접목해준 추억의 고향이다.
스승인 김 동선 선생님을  한번도 못 찾아뵌것이 두고 두고 후회가 된다.
꽉 막힌 나를 이끌어 주신 은사를 난 왜 그렇게도  못 찾아 뵈었을까?
두루 살피지 못한 이기적인 생각땜에 그런거 같다.
다 지나고 보면 후회투성이 뿐이다.
인생은, 그래서 후회를 하면서 사는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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