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2
14
토요일
밤하늘보다 내 머리카락이 더 검다
힘듬
1,327 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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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번째 일기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하늘이 구름한점 없이 푸르렀다.
일정이 모두 끝난뒤의 밤하늘은 구름이 껴 달이 보이지 않을정도였다.
나무 사이에 걸린 희끄므리한 한줄기의 빛이 달이였을 줄이야.
저녁으로 식당에서 먹은 수육국밥은 매우 뜨거웠다.
하지만 고기의 쫄깃함이 이빨을 자극하고, 꼬슬꼬슬한 밥과 짭짤한 국물이 혀를 부드럽게 감싸서
7000원의 적당한 가격으로 국밥 한 그릇을 먹을 수 있었다.
배가고팠던 나는 허겁지겁 먹느라, 혀가좀 데였다. 하지만 맛은 기가막히게 맛있었다.
이래서 사람들이 국밥, 국밥하는 거였군.
부추. 초록색 부추도 사이드 메뉴로 나왔는데, 맛의 조합이 그다지 어울리지는 않았다.
차라리 겉반찬으로 참기름과 고춧가루,소금이랑 무쳐서 내어왔으면 좋았을텐데.
아, 눈이 침침하다. 아직 평균수명의 절반도 못살았는데 말이다.
안경을 쓰기 시작한 나이는 초등학교 4학년, 한창 인터넷이라는 자극적인 요소에 대해 활발히 연구하던 때였다.
그때부터 점점 시력이 나빠지기 시작하더니, 근시에다가 최근에는 난시까지 얻어걸리게 되었다.
심지어 요즘에는 뭔가 검은색 점이 떠다닌다. 아마 비문증인가 싶다. 안과에 한번 들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안경없이 못사는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없으면 불편하다.
안경이 그다지 두꺼운것도, 무거운 것도 아닌데 왜 안경에 눌려서 코가 낮아지는 느낌일까.
어렸을때 '안경좋아!'하고 엄마 아빠 안경을 동경했던 어린 내가 바보같다.
최근에는 초등학생인 동생도 내 안경을 가지고 놀기 좋아하는데, 나처럼 시력이 낮아질까봐 볼때마다 빼았는다.
어제 귀찮아서 쓰지 않은 일이 있는데, 어느 친구 L에 관한 이야기다.
친구 L은 내가 다니는 교회의 학생회장을 맡고있는 친구이다. 훤칠한 키에, 또렷한 이목구비. 그리고 그것을 더욱 부각시켜주는 개성있는 패션.
물론 나도 키가 작은편은 아니지만, 상체는 큰데 하체는 이상하게 짧은 유전자를 물려받아서 지금 175cm정도 한다.
근데 그 친구 L은 다리가 젓가락처럼 기다란게 아닌가? 나는 그의 옆에 앉아있을 때마다 '앉은키는 같은데 선키는 다르네'하는 생각을 떨쳐낼수가 없다.
솔직히, 질투라고 봐도 되겠다. 심지어 그는 공부도 잘하는듯 하고, 나보다 더 외향적이며, 다재다능하다.그의 장래희망은 모델. 심지어 자신이 잘난것도 알고있다.
아, 이렇게 쓰니깐 너무 쭈그리같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전부 사실인데.
뭐, 요점은 그가 어제 한 4시 5분쯤에 나에게 카톡을 보냈다.
'(작성자)야 합격하자, 우리 둘이 같이 가야지'
그는 나와 같은 고등학교를 지원한 1인중 한명이다. 그리고 어제 대화하면서 알았는데, 그도 합격이다.
근데 나는 처음에 이 친구가 대체 누구인가 알지 못하였다. 카톡에 뜬 이름을 한번도 들어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누구인지 몰라서 혹시 L이냐고 물었더니 맞다고 한다.
본명을 왜 쓰지 않느냐고 물으니 자신은 본명대신 예명을 쓴다고 한다.
예명이라니, 예술적인 남자가 따로 없다.
나는 지금까지 그의 예명이 본명인줄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도 그럴게, 모두들 L이라고만 부르지 H라고 부르지는 않기 때문이다.
허, 예명이라니. 예명이라니.
내 얼굴에 예명을 가지고 있었으면 분명 비웃음을 당했을 것이다.
물론 나도 '예명을 가져볼까? 히히'하던 시절이 있었다. 한창 소설인가 그림인가 창작활동을 하던때였다.
근데 지금 이름이 그닥 싫은것도 아니고, 충분히 유니크하며 동시에 흔한 이름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에, 예명같은건 만들지 않기로 했다.
대신 싸인(Signature)을 하나 만들어냈는데, 지금까지도 아주 마음에 들어하는 싸인이다.
누구든 자신을 대표할만한 좌우명이나, 말버릇, 혹은 싸인을 만드는것은 아주 바람직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잘 생각해 보자. 호랑이는 죽은후에 가죽을 남긴다고 하고 사람은 죽은후에 이름을 남긴다고 하는데,
이왕 남길거면 조금 더 멋있게, 곡선과 직선을 오묘하게 섞어가며 이름 자체를 하나의 예술작품으로 남기는 행위가 얼마나 직관적인가?
또한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기에도 좋을것이다. 특정 단어를 들으면 사람이 떠오르고,그 사람이 떠올려지는 순간 우리 기억속에서 다시 살아숨쉬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너무 멀리 나간걸까? 나는 주위 사람들에게 '과대해석능력자'라는 소리를 종종 듣는다.
그래도 좋다.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하늘이 구름한점 없이 푸르렀다.
일정이 모두 끝난뒤의 밤하늘은 구름이 껴 달이 보이지 않을정도였다.
나무 사이에 걸린 희끄므리한 한줄기의 빛이 달이였을 줄이야.
저녁으로 식당에서 먹은 수육국밥은 매우 뜨거웠다.
하지만 고기의 쫄깃함이 이빨을 자극하고, 꼬슬꼬슬한 밥과 짭짤한 국물이 혀를 부드럽게 감싸서
7000원의 적당한 가격으로 국밥 한 그릇을 먹을 수 있었다.
배가고팠던 나는 허겁지겁 먹느라, 혀가좀 데였다. 하지만 맛은 기가막히게 맛있었다.
이래서 사람들이 국밥, 국밥하는 거였군.
부추. 초록색 부추도 사이드 메뉴로 나왔는데, 맛의 조합이 그다지 어울리지는 않았다.
차라리 겉반찬으로 참기름과 고춧가루,소금이랑 무쳐서 내어왔으면 좋았을텐데.
아, 눈이 침침하다. 아직 평균수명의 절반도 못살았는데 말이다.
안경을 쓰기 시작한 나이는 초등학교 4학년, 한창 인터넷이라는 자극적인 요소에 대해 활발히 연구하던 때였다.
그때부터 점점 시력이 나빠지기 시작하더니, 근시에다가 최근에는 난시까지 얻어걸리게 되었다.
심지어 요즘에는 뭔가 검은색 점이 떠다닌다. 아마 비문증인가 싶다. 안과에 한번 들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안경없이 못사는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없으면 불편하다.
안경이 그다지 두꺼운것도, 무거운 것도 아닌데 왜 안경에 눌려서 코가 낮아지는 느낌일까.
어렸을때 '안경좋아!'하고 엄마 아빠 안경을 동경했던 어린 내가 바보같다.
최근에는 초등학생인 동생도 내 안경을 가지고 놀기 좋아하는데, 나처럼 시력이 낮아질까봐 볼때마다 빼았는다.
어제 귀찮아서 쓰지 않은 일이 있는데, 어느 친구 L에 관한 이야기다.
친구 L은 내가 다니는 교회의 학생회장을 맡고있는 친구이다. 훤칠한 키에, 또렷한 이목구비. 그리고 그것을 더욱 부각시켜주는 개성있는 패션.
물론 나도 키가 작은편은 아니지만, 상체는 큰데 하체는 이상하게 짧은 유전자를 물려받아서 지금 175cm정도 한다.
근데 그 친구 L은 다리가 젓가락처럼 기다란게 아닌가? 나는 그의 옆에 앉아있을 때마다 '앉은키는 같은데 선키는 다르네'하는 생각을 떨쳐낼수가 없다.
솔직히, 질투라고 봐도 되겠다. 심지어 그는 공부도 잘하는듯 하고, 나보다 더 외향적이며, 다재다능하다.그의 장래희망은 모델. 심지어 자신이 잘난것도 알고있다.
아, 이렇게 쓰니깐 너무 쭈그리같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전부 사실인데.
뭐, 요점은 그가 어제 한 4시 5분쯤에 나에게 카톡을 보냈다.
'(작성자)야 합격하자, 우리 둘이 같이 가야지'
그는 나와 같은 고등학교를 지원한 1인중 한명이다. 그리고 어제 대화하면서 알았는데, 그도 합격이다.
근데 나는 처음에 이 친구가 대체 누구인가 알지 못하였다. 카톡에 뜬 이름을 한번도 들어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누구인지 몰라서 혹시 L이냐고 물었더니 맞다고 한다.
본명을 왜 쓰지 않느냐고 물으니 자신은 본명대신 예명을 쓴다고 한다.
예명이라니, 예술적인 남자가 따로 없다.
나는 지금까지 그의 예명이 본명인줄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도 그럴게, 모두들 L이라고만 부르지 H라고 부르지는 않기 때문이다.
허, 예명이라니. 예명이라니.
내 얼굴에 예명을 가지고 있었으면 분명 비웃음을 당했을 것이다.
물론 나도 '예명을 가져볼까? 히히'하던 시절이 있었다. 한창 소설인가 그림인가 창작활동을 하던때였다.
근데 지금 이름이 그닥 싫은것도 아니고, 충분히 유니크하며 동시에 흔한 이름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에, 예명같은건 만들지 않기로 했다.
대신 싸인(Signature)을 하나 만들어냈는데, 지금까지도 아주 마음에 들어하는 싸인이다.
누구든 자신을 대표할만한 좌우명이나, 말버릇, 혹은 싸인을 만드는것은 아주 바람직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잘 생각해 보자. 호랑이는 죽은후에 가죽을 남긴다고 하고 사람은 죽은후에 이름을 남긴다고 하는데,
이왕 남길거면 조금 더 멋있게, 곡선과 직선을 오묘하게 섞어가며 이름 자체를 하나의 예술작품으로 남기는 행위가 얼마나 직관적인가?
또한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기에도 좋을것이다. 특정 단어를 들으면 사람이 떠오르고,그 사람이 떠올려지는 순간 우리 기억속에서 다시 살아숨쉬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너무 멀리 나간걸까? 나는 주위 사람들에게 '과대해석능력자'라는 소리를 종종 듣는다.
그래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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